잔 다르크의 삶, 죽음과 업적

2021. 10. 18. 12:32카테고리 없음

 

잔 다르크의 삶

 

잔 다르크는 1412년 프랑스 로렌 지방에 위치한 동 레미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태어난 이 1412년의 프랑스는 이미 영국과의 백년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지고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백년전쟁은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으나 100년 동안 계속해서 싸운 것은 아녔습니다. 중간에 여러 번 싸움을 멈추고 쉬기도 하고 한 번은 20년 동안 싸움이 나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왕위를 둘러싸고 1337년부터 벌어진 전쟁이었습니다. 132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어머니가 카페 왕가 출신, 다시 말해 샤를 4세의 누이이므로 자신이 프랑스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두 나라 사이의 전쟁으로 번져 백년전쟁이 되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싸우는 족족 프랑스군이 패하면서 영국군이 우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영국군에게는 강력한 활이 있었습니다. 이 활은 100m 밖에서 쏟아도 달려오는 프랑스군의 갑옷을 뚫을 만큼 그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샤를 7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1420년대에는 프랑스의 상황이 더욱 안 좋아졌습니다. 랭스는 파리 동북쪽에 위치한 한 도시입니다. 이 당시에 랭스의 대주교는 왕의 종교 행사를 맡아 진행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으며 이 랭스에서 대관식을 올려야만 비로소 왕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샤를 7세는 랭스의 성당에서 대관식을 진행하지 못해 같은 프랑스 신하들도 그를 왕으로서 대접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이 왕을 얕잡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적과 내통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잔 다르크의 죽음

 

잔 다르크의 죽음은 그 어떠한 위인의 죽음보다 가슴 아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1431년 겨우 19살의 나이에 사망을 하는데 그것도 화형을 당해 죽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 년 전 콩피에뉴 전투에서 잔 다르크는 부르고뉴 파 군사에게 잡혀 영국군의 포로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부르고뉴 공이 제안한 휴전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잔 다르크는 샤를 7세를 호위하며 파리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파리 근처의 콩피에뉴에 도착했을 무렵 부르고뉴 파가 갑자기 잔다르크 군을 공격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뒤에는 영국군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잔 다르크는 그들에게 속은 것이었습니다. 휴전 협정만을 위해 길을 나서던 중이었으므로 샤를 7세는 별다른 무장을 하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잔 다르크는 샤를 7세를 피신시킨 후 자신이 남아 대항하며 시간을 벌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잔 다르크가 탄 말이 다리에 화살을 맞으면서 잔 다르크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어느샌가 그녀 주위를 몇십 명의 군사들이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잡힌 잔 다르크에게 부르고뉴 파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우면 목숨은 살려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 다르크가 강력히 거절하자 부르고뉴 파 사람들은 그녀를 영국군에 팔아넘겼습니다. 잔 다르크는 루앙의 감옥에 갇혀 1431년 1월 13일부터 일곱 차례의 종교 재판을 받았으며 결국 마녀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성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뜻에 따랐다는 그녀의 주장과 남장을 하고 병사들을 지휘했던 사실이 마녀의 증거가 되어 결국 그녀는 당시 마녀 사냥의 방식인 화형을 당했습니다.

 

 

잔 다르크의 업적

 

잔 다르크는 성녀입니다. 그녀는 종교 색깔이 짙었던 유럽의 1400년대에 태어나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겨우 13살의 나이에 '프랑스를 구하라'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4년 뒤, 그녀는 또 한 번 '프랑스를 구하라'라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계시를 따라 2월 13일 시농 성으로 향해 샤를 황태자를 만났습니다. 황태자는 그런 잔 다르크를 보며 오를레앙 성을 구하라고 명령을 하였고 그녀는 그 명령대로 따라 오를레앙 성에서 영국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녀가 17살에 세운 업적이었으며 그렇게 그녀는 황태자로부터 작위를 받고 대관식에 참여했습니다. 그 뒤 그녀는 부르고뉴 파의 습격에 의해 결국 영국군의 포로가 되고 여러 차례의 종교 재판을 통해 마녀로 찍힌 뒤 19살의 나이에 루앙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백년전쟁이 끝난 1453년 명예 회복 재판이 열렸습니다.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인해 영국군으로 기울었던  백년전쟁은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고 이 명예 회복 재판을 통해 잔 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되었습니다. 1456년 샤를 7세는 잔 다르크에게 내려졌던 유죄 판결을 파기시키고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힘썼으며 잔 다르크가 처형된 광장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1920년이 되었을 때 교황 베네딕투스 15세는 잔 다르크를 성녀로 선포했으며 같은 해 6월 24일 프랑스 의회에서는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잔 다르크 기념일로 선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