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 죽음과 업적

2021. 10. 20. 16:02카테고리 없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4월 15일 이탈리아의 피렌체 북쪽에 위치한 한 마을인 빈치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빈치는 밝고 활기차고 공부에 욕심이 있는 아이였으며 그중 미술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5살의 나이에 어머니와 헤어져 할아버지와 살게 되었으나 14살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피렌체의 유명 화가이자 조각가인 베로키오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빈치는 미술 외에 음악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는 19살에 밀라노 공국의 일 모로 왕 환영식에서 리라라는 악기를 연주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0살에는 피렌체 화가 협회의 회원도 되어 이 무렵에 탄생한 작품이 바로 <수태고지>였습니다. 그는 그의 스승인 베로키오로부터 독립하여 화실을 차리고 <성 제롤라모>, <삼왕 예배>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0살에는 일 모로 왕의 초청을 받아 밀라노로 가서 군사 고문직으로 있으며 무기 설계, 운하 건설, 성 쌓기와 토지 개량 등의 일에 본인의 예술 지식과 경험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프란체스코 기마상 제작을 착수하고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벽화에 <동굴의 성모>를 그리는 등 본인이 원래부터 힘써왔던 일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이때 탄생한 또 다른 작품이 바로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벽화 <최후의 만찬>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죽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67살의 나이로 1519년 5월 2일 세상을 떠났으며 이미 그의 죽음이 다가옴을 느꼈는지 다빈치는 그의 사망 얼마 전인 4월 23일에 이미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그는 사망할 때 즈음에 자신의 과학적 연구와 자신이 힘써왔던 예술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하여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후세에 전달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유언장에는 <모나리자>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제자 프란체스코에 넘긴다고 적혀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그중 레오나르도의 일기를 매우 소중히 여겼으며 그 일기장에는 '지혜는 경험의 시녀이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생 독신으로 당시 그의 슬픔을 옆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제자 프란체스코밖에 없었습니다. 다빈치가 눈을 감고 얼마 뒤 프랑수아 1세가 이에 대한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모나리자>를 보았습니다. 벽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는 여태까지 봐왔던 <모나리자>와 달랐습니다. 몇 번을 봐왔던 기쁜 듯이 미소를 짓던 <모나리자>의 얼굴이 오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지 슬픈 얼굴로 보였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모나리자>에 그 미소의 의미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명작 <모나리자>는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업적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 예술가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대단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최후의 만찬>은 1495년에 착수하여 2년 뒤인 1497년에 완성됐습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을 활용하여 그리스도와 12제자의 성격을 훌륭하게 그려낸 걸작으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만토바에서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을 그리고 50살에는 이탈리아 군의 군사 토목기사를 종군한 적도 있습니다. 이때 그는 자연과학과 기하학 등도 연구하면서 자전거 모형과 그 유명한 인체의 비율 등의 그림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51살의 나이에 피렌체로 향해 그곳에서 조콘다 부인을 모델로 한 <모나리자>와 베키오 궁전에 <앙기아리의 싸움>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벽화는 일 년 뒤 중단되었으며 4년에 걸쳐 거의 완성 단계였던 <모나리자>는 조콘다 부인의 사망으로 미완성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 이번에는 프랑스의 궁정 화가 겸 기술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네무 르 공의 초청으로 제자들과 함께 로마로 가 그곳에서 헬리콥터 모형을 최초로 구상했습니다. 64살 노인이 돼서도 그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64살의 그는 수학과 해부학을 연구하고 65살에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고 이번엔 프랑스로 넘어가 앙부아즈 성의 궁정 화가가 되며 궁정 행사 지휘도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