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7. 11:41ㆍ카테고리 없음
피카소의 삶
피카소는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인 말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에스파냐의 전통에 따라 아버지의 성인 루이스와 어머니의 성인 피카소를 함께 따 루이스 피카소라는 성과 파블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피카소의 아버지는 시골 학교 미술 선생님이자 화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2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재밌게도 비둘기를 즐겨 그리던 아버지를 따라 피카소의 첫 그림도 비둘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죽고 난 후 그 위대성을 인정받았던 것과 달리 피카소는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그 명성은 그가 눈을 감는 92살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피카소는 어렸을 때부터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거나 여러 천재 예술가들과 만남을 가지는 등 미술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파리로 유학을 가 여러 미술관을 순례하며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인 자코브를 비롯한 여러 미술가들과 사귀게 됐습니다. 피카소는 14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바르셀로나로 전근을 따라 그곳 미술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마드리드의 왕립 미술 학교에 합격해 들어갔으며 마드리드 미술전에 <과학과 사랑>을 출품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중퇴를 하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후 첫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는 이 해에 <알라공의 풍습>이란 작품으로 미술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피카소의 죽음
피카소는 1973년 4월 8일 9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만, 그가 남긴 작품은 무려 6만여 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숨을 거두는 그 해에까지 <화가와 모델>이라는 연작을 냈으며 83살의 나이에는 푸생의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 번안화를 제작, 81살에는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식사> 번안화를 제작했습니다. 그가 79살이었을 때에는 파리 유네스코 본부의 벽화에 <천사의 추락>을, 71살에는 발로리스 성당의 벽화 <전쟁>과 <평화>를 제작하는 등 그는 항상 의뢰를 받고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놀랍게도 피카소는 한국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적이 있었습니다. 1951년 피카소는 당시 6.25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담은 <한국에서 일어난 학살>이란 제목의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피카소는 특히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는데 이는 모두 그의 경험으로부터 고스란히 탄생한 작품들입니다. 피카소는 당시 의학 기술을 고려해 오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피카소는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입체파 등 다양한 시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고 그의 작품들은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화풍을 이룩하며 그의 그림도 발전에 거듭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현재 자신이 평생의 스승으로 여겼던 세잔이 살았던 보브나르그의 성에 묻혀 지금까지도 천재적인 예술론을 발휘한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업적
피카소는 파리로 유학을 가 '청색 시대'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그의 작품들은 어둡고 강렬한 푸른 색조의 특징을 보였는데 <삶>, <장님의 식사> 등이 당시 그의 대표적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3년 뒤 몽마르트르에 뿌리를 내리면서 피카소는 '장밋빛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그의 작품 색조는 푸른색에서 분홍색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의 작품에는 또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졌으며 이러한 변화 과정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 바로 <거트루드 스타인 상>, <두 사람의 나부>가 있습니다. 특히 1907년에 완성한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후 그는 입체주의 중에서도 '분석적 입체파 시대'와 '종합적 입체파 시대'에 순서대로 들어갔으며 그가 <아가씨의 초상>을 그린 그 해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발레 <행진>의 무대 장치와 의상을 제작을 하는 등 그의 작품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훗날 피카소는 에스파냐를 여행하며 여러 작품을 그리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투우도>였습니다. 그리고 에스파냐 여행 몇 년 뒤 피카소의 대표작이라고도 불리는 <게르니카>를 완성했습니다. 이 <게르니카>는 불멸의 대작이라고까지 일컬어지며 입체주의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피카소의 모든 수법이 종합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