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삶, 죽음과 업적
안데르센의 삶
미래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가 되는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덴마크 오덴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으나 매일 밤 재미있는 책을 읽어주고 들려주는 아버지 덕분에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으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그가 11살 때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가 재혼해 안데르센에게 있어 새아버지는 노름꾼에다가 술주정뱅이로 툭하면 안데르센을 구박하고 괴롭혔습니다. 안데르센은 결국 빈민 학교에 들어갔으나 나중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때가 겨우 13살이었을 때입니다. 하지만, 그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는 7살이 되던 해에는 처음으로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4살에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고향을 떠나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배우가 되기 위한 길은 험난했으며 그는 가난한 생활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안데르센은 시보니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시보니 선생은 한스가 오덴세에서 지냈을 때 음악 학교 교장이 되었기에 안데르센은 시보니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자 그를 찾아갔습니다. 마음씨 착한 시보니 선생은 오덴세에서까지 온 한스를 반갑게 맞이하면 그가 성악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줬습니다. 그러나 안데르센의 곱디 고운 목소리는 변성기를 거치며 또다시 꿈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안데르센의 죽음
안데르센은 70살의 나이로 1875년 8월 4일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인 같은 해 4월 2일에는 안데르센의 생일 축하 파티에서 덴마크 전 국민이 그를 축하해줬으며 무려 국왕도 그에게 훈장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뒤로도 나이를 생각해 일을 쉬엄쉬엄 하기보다는 더욱 몰두했고 결국 그의 몸은 쇠약해져 갔습니다. 나중에 그는 동화를 쓸 수도 없었습니다. 덴마크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안데르센의 죽음 역시 덴마크 전 국민이 슬퍼했으며 덴마크 정부는 안데르센의 죽음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코펜하겐 거리에 안데르센 동상을 세웠습니다. 안데르센이 살아 있을 동안에도 그는 추밀 고문관과 고향 오덴세의 명예시민이 되었습니다. 당시 안데르센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본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즉흥 시인>이었습니다. <즉흥 시인>은 덴마크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 지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이 작품으로 그는 덴마크 제일의 작가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1837년에 발표한 동화집 속 <인어 공주>라는 한 작품은 사람들이 그를 동화작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도록 만들었습니다. 1857년 12월 6일 안데르센을 맞이하는 오덴세 시는 축제 같은 분위기로 안데르센을 환영했습니다. 이때 그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해 동화를 써왔고 앞으로도 쓸 것이라고 밝히며 축제 분위기를 더 밝게 만들었습니다.
안데르센의 업적
사람들은 안데르센을 동화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안데르센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동화들을 무려 160여 편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24살의 나이에 한 시집을 펴냈고 이 시집에는 바로 <아마게르 섬 동쪽 끝까지의 도보 여행>과 <죽어 가는 아이들>가 실려있었습니다. 같은 해에는 극본 <니콜라이의 탑의 사랑>을 쓰고 왕립 극장에 올리며 다음 해에는 덴마크를 여행하며 시를 썼습니다. 안데르센은 처음부터 동화작가로 유명한 것이 아니며 동화만을 써온 것도 아녔습니다. 오히려 그는 30살의 나이에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쓴 <즉흥 시인>이 유럽 전 지역에서 사랑을 받으며 그는 덴마크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는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첫 동화집을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인어 공주>가 실린 세 번째 동화집을 1837년에 세상에 내놓은 뒤 그는 동화작가로서도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이후로도 <그림 없는 그림책>, <미운 우리 새키>, <나이팅게일>과 <성냥팔이 소녀>를 펴냈습니다.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덴마크, 유럽에서만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닌 이후에는 15개 국어로 번역이 될 정도로 전 세계에 큰 사랑을 받습니다. 안데르센은 40살의 나이에 똑같이 동화로 유명한 그림 형제를 베를린에서, 42살에는 디킨스를 영국에서 만나는 등 전설적인 만남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