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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의 삶, 죽음과 업적

리나_입니다 2021. 10. 20. 18:25

 

미켈란젤로의 삶

 

미켈란젤로는 1475년 3월 6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때는 르네상스의 시기로 르네상스는 '재생'과 '부흥'을 의미하며 이는 원래 이탈리아 미술 용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16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예술인 사람 중심 미술 경향을 통틀어 르네상스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재생과 부흥은 중세의 신 중심 예술에서 인간 중심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뜻하며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예술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인 뛰어난 미술 실력에 그는 13살이 되었을 때 당시 유명한 화가 가를란다요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는 메디치 가의 전속 조각가인 베르톨도 디 조반니 밑에서 조각을 배우다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메디치 가에 일하게 되었습니다. 로렌초가 사망하자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넘어가 조각 <바쿠스>를 제작하고 프랑스 추기경의 부탁을 받아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피에타>의 대리석상을 조각하며 예술가로서의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29살이 되던 해에 그 유명한 <다비드>가 완성됐습니다. <다비드>는 시청의 청탁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그 높은 완성도에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그의 뛰어난 실력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다시 불러 그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릴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렇게 미켈란젤로는 1508년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그리기를 착수해 4년 뒤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이 또한 후대까지 오래오래 알려지는 명작이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죽음

 

미켈란젤로는 89살의 나이로 1564년 2월 1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를 고려해보면 그는 매우 장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노인이 되고 쇠약해지면서도 예술에 힘썼습니다. 82살에는 대원 개의 목제 모델을 완성하고 75살에는 <바울로의 개종>과 <베드로의 책형>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훌륭한 실력과 이를 보여주는 작품들에 미켈란젤로에게 의뢰는 계속 쏟아졌습니다. 율리오 2세를 존경하는 교황의 명에 따라 미완성인 그의 무덤을 마무리해야 했고, 그의 무덤이 앉혀질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손봐야 했습니다. 이미 나이가 많았던 미켈라 젤로는 대성당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미켈란젤로가 걱정되었습니다. 1564년 차가운 겨울이 불던 2월의 어느 날, 미켈란젤로의 한 제자는 스승을 보기 위해 작업장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돌아보아도 미켈란젤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미켈란젤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했냐 제자가 걱정되어 물어보자 미켈란젤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움츠려 드는 게 마을 한 바퀴 산책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미켈란젤로는 그의 제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말했습니다. "나를 피렌체의 흙 속에 묻어 주게." 이 한마디를 남기 후 미켈란젤로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업적

 

미켈란젤로는 대표적인 르네상스 예술의 거장이었습니다. 인간과 사실의 중심을 둔 르네상스 예술의 특징을 고려해본다면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이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울리우스 2세로부터 이에 대한 의뢰를 처음 받은 후 한 번 거절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벽화에 자신이 없어 자기 대신 라파엘로를 추천하였으나 결국 1508년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4년간의 피나는 노력의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천지 창조>, <아담과 이브>, <노아의 홍수> 등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딴 9가지의 장면을 중심으로 무려 343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벽화를 완성했습니다. 그 이후로 미켈란젤로는 <모세>, <노예> 등을 제작하고 2년 뒤에는 산 로렌초 성당의 정면 건축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메디지 가 묘비의 제작을 의뢰도 받게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4년 뒤 이 의뢰에 대한 착수를 진행했으며 메디치 가 묘비에 <아침>, <낮>, <저녁>과 <밤> 조각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54살에 피렌체의 방위 총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후 시스티나 성당 안쪽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최후의 심판>을 1541년에 완성했습니다. 그의 우수한 실력에 그에게 오는 의뢰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티칸 궁의 파올리나 성당의 장식을 의뢰받았으며 이때 그의 나이는 무려 67살이었습니다. 그리고 72살에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의 조영 주임이 되어 75살에는 <바울로의 개종>, <베드로의 책형>을 완성했습니다.